막연하게 나중에 대학원을 갈 수도 있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서 (가능성이 0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번은 인턴을 해봐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방학 때 즉흥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직접 해보는 것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은 차이가 큰 것 같다. 원래 학기 중에 미리 말씀드려야 하는데 방학 중에 메일을 보냈는데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일단 연구실 인턴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은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직접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약대 과목들 중 그나마 좋아하는 과목이 화학 관련 과목들이었기 때문에 유기합성하는 실험실에 갔다. 내가 유기화학에서 재미를 느꼈던 부분은 생성물과 반응물이 있고 그 사이 메커니즘을 제시해주면 그걸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즉 공부였던 것 같다. 이번 인턴을 통해 공부와 연구가 별개라는 걸 크게 느끼고 왔다.
처음 인턴을 하게 되면 대학원생분들이 하는 것들을 보고 배우기만 하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갖는다. 볼 때는 집중해서 봤지만 적어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쉬운 것 같다. 용매, 반응물 등 실험에 사용하는 화학물질들은 하나같이 다 순도가 높아서 그런지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뿐이다. 실험할 때 니트릴 장갑 위로 흘려도 장갑이 손을 완전히 잘 막아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용매를 니트릴장갑 위에 쏟으면 화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고 손이 축축해졌다. 집에 와서 보니 직접적으로 손 위에 쏟은 것도 아닌데 껍질이 좀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장갑을 착용하고 있으면 얼굴이 간지러울 때 얼굴 근처를 만지고 싶어서 팔뚝이나 장갑을 벗고 만졌는데 그럼에도 이 때 화학물질이 눈에 들어간건지 안구가 더 전보다 건조해진 게 느껴졌다. 여기 있으면 피부가 뒤집어진다고 그러셨는데 정말 인턴 기간의 피부가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화학 물질의 냄새였다. 책에서 봤던 유기화학 hexane, pentane은 성질이 유사한 탄화수소 정도로 배우지만 이 둘은 냄새도 다르고 컬럼할 때 구별해서 사용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Hexane보다 pentane의 냄새가 더 역겨웠고 amine류도 그랬다. Silica에는 장기간 흡입 시 폐손상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고 솔직히 컬럼관 비울 때 좀 마실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원생분들이 농담 삼아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회사 같은 곳은 불임이 많다고 그러셨는데 화학물질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합성하는 실험실은 기본적으로 9시부터 6시까지 혹은 그 이상이 많고 빡센 편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달밖에 안했는데도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이건 내가 full time으로 일해본 적이 없어서 적응을 못해서 생긴 것도 크겠지만 정시에 집에 가는 게 드물고 주말에도 실험 때문에 나오게 되긴 하는 것 같다. 월급은 법적으로 최대 월급이 정해져 있는데 그걸 꽉 채워 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내가 갔던 연구실은 교수님도 좋으시고 돈도 많이 주셔서 이 분야로 대학원을 갈 거라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습할 때 아직까지 큰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말이 실습이지 즉 실험수업할 때 그렇게 재밌었던 실험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인턴을 하러 갔는데 실험을 4주 정도 해보니까 재미는 별로 없었다. 과정은 다음의 반복인 것 같다.
- 물질을 반응시키고 기다린다. 1시간에서 12시간 이상까지 다양하게 소모된다.
- TLC를 찍으면서 반응이 잘 가는지 확인하고 NMR을 통해 수득률을 체크하거나 원하는 product가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 TLC를 통해 원하는 물질을 확인하였으면 원하는 product로 추정되는 물질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실리카를 붓고 packing을하고 컬럼 크로마토그래피를 진행하는데 용매를 내리기 위해 손으로 고무 풍선(?)같은 것을 눌러서 압력을 줘서 해야하는데 이게 정말 끊임없이 하려니까 손이 아프고 오른손가락 관절이 갈리는 느낌이었음 그런데 원하는 물질이 나올 때까지 계속 해야했다. 시험관이 백 개를 넘게 내려도 원하는 물질이 분리되지 않고 몇 시간씩 이거 하다가 실패하니까 허탈했다.
- 논문에 실험을 실으려면 수득률이 괜찮게 나와야 하는데 내가 초보라서 그런 게 크겠지만 transfer하다가 몇 방울씩 흘리고 crude 좀 버리고 이러다보니 수득률이 처참했다. 그리고 이런 실수들도 있지만 한 번의 실수만으로 모든 실험 과정을 날릴 수 있었다. 어쨌든 product가 나오면 nmr을 찍어서 원하는 물질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이 과정의 반복인데 솔직히 단순히 반복하는 느낌이 크고 재미있진 않았다. 대학원에 계시던 분들은 다 친절하고 잘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잘 못해서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도 있다. 별로 도움이 못된 것 같다ㅠㅠㅠ 배운 점은 wet lab 즉 실험하는 대학원이 나에게 안 맞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고 진학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방학이 소중하다는 것과 방학이 있을 때 최대한 즐기자는 것 ㅎㅎ 노는 게 최고다. 그리고 연구실에 외국인 분이 계셨는데 영어로 말하기를 아주 못한다는 걸 깨달았고 논문을 읽는 방법을 제대로 공부할 필요성에 대해서 느꼈다. 영어를 꽤 오래 배웠지만 말하기는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 이것도 필요하다면 따로 공부해야할 것 같다. 솔직히 논문 읽는 게 머리만 아프고 필요하면 읽는 정도인데 능숙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논문 검색도 그렇고 모든 게 익숙하지가 않다. 약대에서 관심 있는 과목들이 크게 합성학, 물리약학, 보건, 향장품, 무기방사성의약품, SW 이용한 신약개발 등이었는데 이번 인턴을 계기로 실험하는 연구실을 제외하면 임상, 보건쪽이나 informatics를 하는 dry lab들만이 남는다.
궁금한 정보들은 bric이나 김박사넷, 하이브레인넷을 통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계산화학이나 양자화학 그리고 딥러닝이 SW를 이용한 신약개발에 관련된 것 같다. 즉 통계도 알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한다고 한다.. 보건 쪽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빅데이터를 이용해 연구한다 등으로 나와 있는 걸로 봐서는 어쨌든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ㅠㅠㅠ 약대 공부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공부할 게 계속 늘어가는 기분이다. 약사라는 직업이 계속 공부해야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일단 해보고 정 안맞으면 그 때 프로그래밍 다루는 쪽은 쳐다도 안보면 되지 않을까 근데 AI가 점점 발전하고 있고 문과도 개발자로 취직하는 때에 외면할 수가 있는 문제인가 싶다.